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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가쁘게 달려왔던 2008년 K-리그가 끝났다. 25돌을 맞아 치러진 올 K-리그에서는 대전 시티즌의 김호 감독이 개인 통산 200승을 돌파했고, K-리그 출범 후 1만 호 골이 터지는 등 많은 기록으로 풍성했다. 그 가운데 지난 9일 열렸던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는 수원 삼성을 우승으로 이끈 차범근 감독을 비롯해, 각 포지션별 최고의 선수 11명이 2008년 K-리그의 가장 빛난 별로 선정됐다.

이에 <축구공화국>에서는 2008년을 환하게 비춰준 그 12명의 이번 시즌을 정리하고 다음 시즌을 전망하는 ‘2008 K-리그, 가장 빛난 열두 별’을 <연말/특집 시리즈 1탄>으로 준비했다./편집자 주


◆축구공화국 <연말/특집 시리즈> 제1탄
▲2008 K-리그, 가장 빛난 열두 별-3편:최효진(25, 포항 스틸러스)


성실한 재간둥이 그 이상의 이미지는 없었던 최효진

인천 유나이티드 시절만 해도 그저 재간 있고 성실한 선수에 불과했다.

이 뜻은 그다지 특출나 보이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2005시즌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데뷔해 두 시즌 간 뛰면서 김치우(서울)와 함께 인천의 양 측면을 책임지는 젊은 선수였던 최효진이 팬들의 주목을 받은 것은 무려 세 시즌이 지나서였다.

인천 시절 장외룡 감독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으며 프로 데뷔 후 두 시즌간 70경기를 소화했을 때만 해도 최효진을 주목하는 팬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포항으로 이적했던 2007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마찬가지였다. 최효진은 당시 포항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확고한 입지를 다졌던 오범석의 백업에 불과했다. 두 시즌반동 안 최효진은 꾸준하게 K-리그에 모습을 드러낸 선수였지만, 팬들의 뇌리에 이름 석 자를 강렬히 새길 정도의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범석이 일본 J 리그 요코하마 FC로 임대이적하면서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최효진은 파리아스 감독의 눈도장을 받고 포항의 붙박이 오른쪽 측면 수비수로 기용되며 자신의 가치를 알리기 시작했다.

2007시즌 포항이 K-리그 우승을 차지한 것은 그의 인생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박원재와 함께 포항 우승의 주역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팬들의 시선을 이끄는 데 성공한 것이다. 당초 ‘오범석의 대안’으로만 비쳤던 자신의 이미지도 완전히 바꿨다. 지금 포항의 오른쪽 측면을 거론함에 있어 팬들은 더 이상 오범석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이제는 최효진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데뷔 4년차, 끝없는 기다림이 안겨준 달콤한 선물

데뷔 4년차가 되어서야 프로 선수로서 각광받은 셈이다. 2008시즌 초반 파리아스 감독으로부터 “개인적으로 K-리그에서 활약중인 측면 미드필더로는 박원재와 최효진이 제일 뛰어난 선수“라는 호평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듯 더 이상 포항은 오범석을 떠올리지 않는다. 낮은 무게 중심과 잔발을 활용한 폭발적인 스피드로 오른쪽 측면을 헤집는 최효진의 플레이스타일은 오범석이 보여주던 그것에 못지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경기에서 꾸준하고도 변함없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만으로도 최효진에게는 의미가 매우 컸던 2008시즌이었다.

2007시즌 K-리그 우승이후 포항의 주력 선수들은 대부분 허정무 감독 체제로 출범한 대표팀에 이름을 오르내렸다. 조성환, 황지수, 황재원 그리고 최효진의 단짝 박원재도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최효진은 예비 명단에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다른 동료 선수들처럼 허정무 감독의 직접적인 부름을 받지 못했다.

서운할 법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것이 최효진에게 오히려 이득이 되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동아시아대회를 다녀온 뒤 줄줄이 대표팀에서 낙마한 다른 동료 선수들이 그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갈팡질팡할 때 최효진은 2007시즌의 활약에 못지않은 꾸준한 플레이로 포항의 측면을 사수했다. K-리그 우승을 통해 좀 더 노련한 모습을 갖췄음은 물론이다.

뒤늦게나마 대표팀의 기회가 주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인천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할 때만 하더라도 생각하지도 못했던 국가대표팀의 부름을 드디어 받았다. 그리고 지난 6월 15일 투르크메니스탄과의 경기를 통해 국가대표 선수로서 데뷔전을 치렀다.

대표팀에서 복귀한 후, 최효진은 더욱더 자신감 있는 플레이를 펼치며 올 시즌 포항을 대표하는 간판스타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올 시즌 K-리그에서 26경기에 출장해 2골, 3도움을 기록한 최효진은 기다림을 통해 끝내 달콤한 선물을 가슴에 품을 수 있었다. 그 달콤한 선물은 바로 송종국(수원)을 밀어내고 차지한 K-리그 베스트 일레븐이다.


2009시즌, ‘팔방미인’으로의 변신을 성공할까?

올 시즌 최효진은 색다른 경험도 해야만 했다. 포항의 세르지우 파리아스 감독은 부상으로 인한 공격진의 전력 누수로 인해 실험적인 전술 운영을 시도했는데 그 중심에 최효진이 있었다. 바로 최전방 공격수로서의 포지션 변화다.

최효진은 낮은 무게중심과 잔발을 활용한 폭발적인 스피드와 돌파가 트레이드마크다. 파리아스 감독의 지적처럼 K-리그에서 최효진만큼 저돌적인 돌파를 선보이는 측면 자원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최전방 공격수라니 무언가 어색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올 시즌 최효진은 분명히 최전방 공격수로서 경기에 임했다. 정규시즌 최종전 서울과의 홈 경기에서도 최효진은 최전방 공격수로 활약하다 본업인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로 자리를 옮긴 바 있다.

사실 최효진은 아주대학교 시절 최전방 공격수를 서본 경험이 있는 선수다. 공격진의 부진에 고심을 하고 있던 파리아스 감독으로서는 ‘공격수 출신’ 최효진의 저돌적인 돌파가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최전방 공격수로 출전한 것이다.

아쉽게도 공격 포인트는 없다. 어찌 보면 ‘실패’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최효진의 장점을 적극 활용해 팀의 문제점을 해결하겠다는 파리아스 감독의 의중을 살펴보면 그만큼 최효진의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 아닐까? 아마도 2009시즌 포항에서는 ‘팔방미인’ 최효진의 진가를 더욱더 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축구공화국ㅣ김태석 기자] ktsek77@footballrepubl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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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가쁘게 달려왔던 2008년 K-리그가 끝났다. 25돌을 맞아 치러진 올 K-리그에서는 대전 시티즌의 김호 감독이 개인 통산 200승을 돌파했고, K-리그 출범 후 1만 호 골이 터지는 등 많은 기록으로 풍성했다. 그 가운데 지난 9일 열렸던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는 수원 삼성을 우승으로 이끈 차범근 감독을 비롯해, 각 포지션별 최고의 선수 11명이 2008년 K-리그의 가장 빛난 별로 선정됐다.

이에 <축구공화국>에서는 2008년을 환하게 비춰준 그 12명의 이번 시즌을 정리하고 다음 시즌을 전망하는 ‘2008 K-리그, 가장 빛난 열두 별’을 <연말/특집 시리즈 1탄>으로 준비했다./편집자 주


◆축구공화국 <연말/특집 시리즈> 제1탄
▲2008 K-리그, 가장 빛난 열두 별-2편:박동혁(29, 울산 현대)


그는 분명 유망주였다. 차세대 한국 축구의 수비를 이끌 기대주였고, 홍명보의 뒤를 이어줄 희망이었다.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한국 올림픽 축구대표팀의 당당한 주축 수비수로 활약할 당시만 하더라도 그는 한국 축구 수비 분야의 블루칩이었다.

그러나 이후 그는 기대만큼 올라오지 못했다. 프로에서의 활약은 그렇다 치더라도 대표팀에서 그를 볼 수 있는 기회는 빠르게 줄어갔다. 홍명보 최진철 김태영이라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의 주축 수비수들의 은퇴 후, 박동혁은 김치곤 박용호 김진규 등 후배들에게도 밀리고 말았다.


‘대표급 수비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지금까지 박동혁의 위치를 가장 잘 타나 낼 수 있는 말은, 좋은 수비수 혹은 대표팀에 어울릴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수비수 정도다. 박동혁에 대한 평가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만, 조금 더 냉정하게 평가하면 대표팀에는 어딘가 모르게 조금 부족한 수비수였다.

물론 이는 조금 억울한 부분이 있기는 하다. 굳이 홍명보나 김태영 등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박동혁의 윗세대에는 이민성 박충균 이상헌 등의 개성 강한 수비수들이 버티고 있었고, 바로 아래에는 조병국 박용호 김치곤 등이 쑥쑥 자라고 있었다. 박동혁과 비슷한 또래인 심재원과 박재홍 등이 그렇게 큰 빛을 보지 못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낀 세대’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았던 박동혁이다.

특별하게 뛰어난 무언가가 있지 않은 수비수였다는 점도 박동혁을 크게 빛나지 못하게 한 원인이었다. 박동혁은 뛰어난 카리스마가 있다거나 리더십이 있다거나 혹은 제공권에 강하다던가 대인방어가 좋다던가 하는 그만의 특장점이 없었던 선수였다. 이런 없는 특징적인 장점도 그가 고만고만한 수비수로 기억되게 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물론 ‘골을 잘 넣는 수비수’라는 수식어 하나 정도는 박동혁을 대변할 수 있겠지만, 수비수로서 갖추고 있는 특징이 없는 선수에게 가끔 골을 넣는다는 이유로 그 이상의 대우를 하기는 힘들다. 박동혁에 대한 현실적인 시선의 평가다.

특징 없는 선수에서, 그대로가 특징인 선수로의 진화

앞서 언급했듯이 박동혁은 특징 없다. 모자라진 않지만 크게 뛰어나지도 않은 선수고, 그럭저럭 수비 잘하는 수비수다. 딱히 두드러지지 않은 그의 경기력과 플레이 스타일은, 그의 비상을 가로막은 가장 큰 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박동혁은 지난 6년 동안 그 없는 특징 자체를 특징으로 바꾸며 조금씩 성장했다. 모든 부분에서 고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선수로의 진화다. 그리고 수비수의 가장 중요한 생명력인 꾸준함도 함께 보여줬다.

박동혁을 가리켜 특징이 없는 선수라고 했지만, 뒤집어서 말하며 약점을 지적하기도 힘든 선수이기도 하다. 딱히 제공권이 부족하지도 않고 1:1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선수도 아니다. 카리스마가 넘치진 않지만 묵묵히 제 역할을 수행하고, 수비진을 잘 리드하진 못하지만 팀의 부족한 부분을 잘 메워주는 선수다. 자신의 없는 특징 그대로를 특징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지난 2002년 전북 현대를 통해 프로에 데뷔한 박동혁은 어느덧 프로 7년 차를 맞았다. 박동혁은 그 7년 동안 큰 부상 한 번 없이 꾸준히 활약했다. 데뷔 첫 해 21경기에 출장했던 박동혁은, 매년 20경기가 넘는 꾸준한 경기 출장을 기록하며 꾸준함을 보여줬다. 올 2008년에는 부상 병동이라는 울산의 수비를 온몸으로 지탱하며 고군분투했다. 지난 세월 동안 박동혁은 뚜렷한 약점이 없는 수비수 그리고 기복이 없는 경기력을 보여주는 선수로 성장했다.

비로소 그 특징과 꾸준함을 인정받은 2008년

박동혁에게 2008년은 선수 생활을 시작한 후 가장 힘든 한해였을 것이다. 무엇보다 팀이 너무 많은 부상자에 시달려야 했다. 그 부상자들의 공백은 고스란히 남은 자의 몫이 됐고, 남은 자 가운데 경험이 풍부한 박동혁은 팀의 이곳저곳을 메우며 희생해야 했다.

그런 박동혁의 희생에 소속팀인 울산은 부상 병동이라는 힘겨움에도 불구하고, 정규리그에서 4위를 기록하고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해 시즌을 3위로 마감했다. 39골이라는 비교적 저조한 득점 기록에도 불구하고 울산이 안정적으로 시즌을 소화할 수 있었던 것도, 26골밖에 내어주지 않은 수비진의 공로가 컸다. 그리고 그 수비진을 이끈 선수가 바로 박동혁이다.

박동혁의 2008년은 그런 꾸준함과 약점이 없는 수비수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딱히 뛰어난 뭔가를 말하기엔 여전히 부족한 선수지만, 딱히 부족한 뭔가 역시 말할 수 없는 수비수로 성장했음을 증명한 것이다.

아직 그에겐 이뤄야 할 목표가 남았다. 바로 대표팀에서도 자신의 그 없는 약점과 꾸준함을 인정받는 일이다. 아직 대표팀의 수비진은 견고하지 않다. 그 주인도 가려지지 않았다. 기복이 없고 약점이 없는 그에게도 분명 기회는 있다. 2009년에는 박동혁의 꾸준함과 안정적인 기량이 K-리그를 넘어 대표팀에까지 미칠 수 있을지 기대된다.

[축구공화국ㅣ손병하 기자] bluekorea@footballrepubl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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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가쁘게 달려왔던 2008년 K-리그가 끝났다. 25돌을 맞아 치러진 올 K-리그에서는 대전 시티즌의 김호 감독이 개인 통산 200승을 돌파했고, K-리그 출범 후 1만 호 골이 터지는 등 많은 기록으로 풍성했다. 그 가운데 지난 9일 열렸던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는 수원 삼성을 우승으로 이끈 차범근 감독을 비롯해, 각 포지션별 최고의 선수 11명이 2008년 K-리그의 가장 빛난 별로 선정됐다.

이에 <축구공화국>에서는 2008년을 환하게 비춰준 그 12명의 이번 시즌을 정리하고 다음 시즌을 전망하는 ‘2008 K-리그, 가장 빛난 열두 별’을 <연말/특집 시리즈 1탄>으로 준비했다./편집자 주


◆축구공화국 <연말/특집 시리즈> 제1탄
▲2008 K-리그, 가장 빛난 열두 별-1편:이근호(23, 대구 FC)


골 넣는 유전자가 부족하다는 얘기를 들었던 한국 축구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었다. 많은 공격수가 그 부족한 골 유전자는 더 이상 한국 축구에 대물림되는 병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아직 그 문제를 확실하게 풀어낸 공격수는 없었다.

그러나 2008년, 가장 가능성 큰 후보를 찾아내는 것에는 성공했다. 대구 FC의 공격수이자 한국 축구대표팀의 스트라이커 이근호다. 이근호를 한국 축구의 부족한 골 유전자를 바꿀 수 있는 후보로 지목한 이유는, 상대 골 마우스 앞에서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다. 최근 수년 동안 한국 축구에서 볼 수 없었던 유형의 스트라이커다.


신데렐라가 되기 위한 준비

지난 2007년은 이근호에게 신데렐라의 탄생을 준비하는 한 해였다. 지난 2006년까지 그의 이름을 대신할 수 있는 수식어는, 청소년 축구대표팀 출신 정도와 2006년 수상한 2군 리그 MVP 수상뿐이었다. 깊은 관심으로 K-리그를 바라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이름조차 생소할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005년 네덜란드 엠멘에서 펼쳐졌던 세계 청소년(U-20) 월드컵에서는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벤치 멤버로 한 차례의 본선 경기에도 나서지 못했고, 인천 유나이티드에서는 2년 동안 여덟 차례의 1군 기록만 있을 뿐 2군 생활을 전전하던 그였다. 그나마 그 여덟 차례 중에서도 교체가 다섯 번이었다.

그랬던 그가 공격 축구를 천명한 변병주 감독을 만나면서 신데렐라가 될 수 있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당시 올림픽 대표팀과 A 대표팀을 지휘하던 핌 베어벡 감독 아래 공격적 재능을 보여준 이근호는, 그해 올림픽 본선에 진출하기 위한 올림픽 축구대표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급부상했다. 불과 2년 전 열렸던 청소년 월드컵 멤버가 고스란히 올라온 올림픽 축구대표팀에서 그의 위상은 달라졌다.

K-리그에서의 활약도 눈부셨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K-리그에서 단 한 개의 골도 기록하지 못했던 그가, 10골을 넣고 세 개의 도움을 기록한 부분은 신데렐라의 탄생을 알리는 전주와 같았다. 대구 FC하면 공격 축구가, 그 공격 축구의 선봉장으로는 이근호가 떠올랐다.

그리고 2008년, 신데렐라의 탄생을 알리기 위한 희망찬 시작을 알렸다. 대구 FC에서는 외국인 선수 에닝요와 공격 파트너 장남석과 힘을 합쳐 K-리그에서 가장 도전적인 팀으로 거듭났고, 올림픽 대표팀과 국가대표팀을 넘나들며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올림픽에서의 실패, 그리고 남아 있는 체력 문제

하지만, 신데렐라의 탄생을 알리기 위해서는 이근호가 넘어야 할 벽이 너무 많았다. 약팀의 한계에 힘들어하던 대구 FC를 혼자 이끌기엔 무리가 있었고, 각급 대표팀에서도 포지션 경쟁을 통해 진정한 주전으로 다시 태어나야 했다.

공격 축구를 지향하는 대구 FC에서 이근호가 넣었던 만은 골은, 어쩜 누구라도 가능했을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무수한 공격 기회에서 그 정도의 골을 넣는 것은 당연하다는 혹자의 평가도 일면 타당하다. 따라서 이근호가 넘어야 할 벽은 K-리그에서의 활약이 아니라 대표팀에서였다.

2008년 올림픽 축구대표팀이 치렀던 경기들 중에서 이근호는 박주영과 함께 두 골을 넣으며 팀 내에서 가장 많은 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정작 올림픽 본선 무대에서 그의 득점은 침묵했다. 세계무대에서의 한계를 절감한 순간이다.

올림픽 대표팀에서의 실패와 더불어 이근호를 압박하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시즌 체력이다. 1년을 기복 없이 소화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요인 중 하나인 시즌 체력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은, 지난 2007년 가능성만 보여주는 것에 그쳤던 이근호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였다. 지난 2007년 이근호가 신데렐라로 완벽한 탄생할 수 없었던 원인도, 바로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급격하게 떨어진 체력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근호는 올림픽에 다녀온 후 K-리그에서 슬럼프에 빠지며 이대로 주저앉고 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사게 했다. 올림픽이란 실패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떨어진 체력으로 그라운드에서 통통 튀지 못하는 이근호는 급격하게 평범한 선수로 전락했다. 거기서 멈추면, 그 역시 다른 공격수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선수로 남을 수도 있었다.

우연한 기회, 스트라이커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하다

그런 이근호에게 기회는 우연하게 찾아왔다. 그것도 한국 축구의 최고봉인 A 대표팀에서다. 북한과의 최종예선 첫 경기를 무승부로 마친 허정무 감독은 10월 15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UAE를 상대로 반드시 이겨야 할 2차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경기에 앞서 준비한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서, 허정무 감독은 정성훈과 신영록을 투톱으로 선발 출전시키며 포메이션의 변화를 불러왔다.

전반 3분 터진 기성용의 선제골로 1-0으로 앞서던 한국은, 이후 이렇다 할 공격 해법을 찾아내지 못한 채 과거의 경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맞이한 후반, 신영록 대신 이근호가 들어가면서 경기는 급속도로 바뀌었다. 대표팀에서 사실상 첫 투톱 역할을 해본 이근호는, 아주 익숙한 자리인 듯한 편안한 움직임을 선보이며 두 골이나 뽑아냈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나흘 뒤 열린 UAE와의 최종예선 2차전에서도 두 골을 뽑아낸 이근호는, 19년 만의 승리라는 중요한 도전을 수행했던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최종예선 3차전에서도 선제 결승골을 터트리며 19년 동안 이어지던 질긴 악연의 고리를 끊었다. 신데렐라의 화려한 탄생을 알린 순간이다.

2008년 K-리그에서도 이근호의 기록은 빛났다. 외국인 선수 일색인 공격 부분에서 리그와 컵 대회를 합쳐 13골 6도움을 기록하며 국내 공격수의 자존심을 살렸다. 공격수로서 가장 좋다는 2:1에 가까운 득점과 도움 비율도 이상적이다. 이 기록은 올림픽 대표팀과 A 대표팀의 일원으로 쉼 없는 일정을 소화하며 이뤄낸 기록이라 더욱 값지다. 데얀이나 두두에 비해 부족했던 개인 기록에도 불구하고 그가 시즌 베스트 11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2008년 이근호는 골 넣는 유전자가 부족하다는 한국 축구의 고질병을 치료해 줄 희망으로 떠올랐다. 물론 그 희망이 실제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2009년에도 변함없는 활약이 필요하다. 그러나 상대 문전 앞에서 그가 보여준 득점 본능과 투쟁심은, 지금보다는 좀 더 성장할 내일을 기대케 하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신데렐라의 탄생을 알린 이근호, 이근호가 앞으로 신데렐라로서의 행복한 삶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축구공화국ㅣ손병하 기자] bluekorea@footballrepubl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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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이을룡이 고향팀 강원 FC의 유니폼을 입는다.

2009시즌을 시작으로 K-리그에 모습을 드러낼 강원도민 프로축구단(가칭 강원 FC)는 2008시즌까지 FC 서울에서 활약했던 노장 미드필더 이을룡의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올 시즌을 끝으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이을룡은 이적료없이 강원 FC로 둥지를 옮겼다. 이을룡의 소속팀인 FC 서울은 K-리그 저변확대와 신생팀 강원 FC의 성공적인 출발이라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이을룡의 강원 FC 이적을 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원도 태백 출신인 이을룡은 강원 FC 출범 선언 이후부터 강원 FC 입단이 가장 유력했던 선수 중 한 명이다. 강원 FC는 두 차례 월드컵을 국가대표로서 뛰며 팬들로부터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고 있는 ‘스타’ 이을룡을 통해 출범 첫해부터 인기몰이를 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부천 SK, FC 서울등을 거친 이을룡은 올 시즌까지 K리그 통산 229경기에 출장해 12골 9도움을 기록중이다.

[축구공화국ㅣ김태석 기자] ktsek77@footballrepubl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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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 아트센터에서 진행된 2008 삼성 하우젠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올해를 끝으로 K-리그에서 은퇴하는 김해운(성남.36) 김학철(인천.36) 김현수(전북.35)가 공로상을 수상했다.

김해운은 1996년 성남 일화의 전신인 천안 일화에서 프로에 데뷔, 올해까지 13년간 한 팀에서 활약하다 최근 은퇴를 결심했다. 김학철은 1995년 프로에 데뷔, 부산과 대구, 인천을 거쳐 올해 은퇴를 결심했다. 전북의 맏형으로서 2006년 전북을 AFC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던 김현수 역시 올해를 끝으로 은퇴한다.

성남의 김해운은 “그간 많이 응원해 준 성남 팬과 구단 직원들께 감사한다.”며 수상 소감을 밝혔다.

울산 현대의 공격수 우성용은 올해까지 115호 골을 기록, K-리그 최다 득점 기록을 경신하는 등 노장 공격수로서 맹활약 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공로상을 수상했다.

최우수 심판에는 올 한해 매끄러운 경기를 진행한 고금복(주심) 손재선(부심)심판이 선정됐다. 대구의 골키퍼 백민철은 2008 K-리그의 전 경기 전 시간을 출장해 특별상을 수상했다.

이와 함께 울산 현대 구단은 우수 유소년 육성을 통한 2008 SBS 고교클럽 챌린지리그 우승을 차지해 공로상을 수상했고, 포항 구단은 관중 최대 증가(98.5%)를 기록한 공로를, 부산 구단은 우수 마케팅을 실시한 공로를 인정받아 공로상을 수상했다.

한편, 스포츠 토토(주)의 오일호 대표이사와 윤강석 K-리그 명예기자가 감사패를 받았다.

[축구공화국l 능동=김형준 기자] mediaboy@footbalrepubl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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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하우젠 K-리그 2008 대상’(이하 K-리그 대상)에서 수원 삼성의 이운재가 베스트 일레븐과 시즌 MVP를 독식하며 K-리그의 대미를 장식했다.

9일 서울 능동 유니버설 아트센터에서 벌어진 K-리그 대상에서 이운재는 올 시즌 베스트 일레븐 골키퍼 부문과 시즌 MVP를 동시에 거머쥐었다. 소속팀 수원의 네 번째 우승을 이끈 이운재는 MVP 선정 투표에서 총 93표중 72표를 획득, 압도적인 표 차이로 MVP를 수상했다.

이 날 MVP를 수상한 이운재는 K-리그 사상 처음으로 골키퍼 선수로 MVP에 선정되는 기쁨을 맛봤으며 최고령 수상자라는 영예도 함께 안았다.

올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는 수원 삼성과 FC 서울 선수들이 대거 선정되어 눈길을 끌었다. 수원은 이운재, 마토, 조원희, 에두등 총 4명이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서울은 아디, 기성용, 이청용등 총 3명이 선정되었다. 울산의 주장 박동혁, 포항의 측면 수비수 최효진, 전북의 특급 프리키커 김형범, 대구의 간판 공격수 이근호 역시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올해의 감독상에는 4년만에 수원에 우승컵을 안긴 차범근 감독이 선정되었으며, 올해의 페어플레이상에는 성남 일화가 선정되었다. 치열한 경쟁을 펼쳤던 신인상 경쟁에는 서울의 신예 이승렬이 선정되었다.

다음은 ‘삼성 하우젠 K-리그 2008 대상’ 수상자 명단

감독상 : 차범근 감독(수원 삼성)
페어플레이상 : 성남 일화
베스트 일레븐 -
GK : 이운재
DF : 아디-마토-박동혁-최효진
MF : 기성용-이청용-조원희-김형범
FW : 에두-이근호
신인상 : 이승렬(서울)
최우수선수상(MVP) : 이운재(수원)

[축구공화국ㅣ능동=김태석 기자] ktsek77@footballrepubl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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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츠뉴스=이순명 기자] 2008년 12월 7일, 수원은 그토록 갈망하던 4번째 우승을 했다.

우승의 주역은 많았지만, 가장 돋보이는 선수 중 하나의 바로 수원 수비의 핵심인 '통곡의 벽' 마토였다. K-리그 수준을 뛰어넘었다는 평을 받은 마토는 수원을 리그 우승으로 이끈 뒤 유럽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었고, 이제 수원이 우승한 지금 마토는 다시금 국가대표팀이 되기 위해 유럽을 바라보고 있다. 마토를 보내는 수원팬들은 고마운 감사의 인사를 보내겠지만, 내심 수원에 '별'을 달아준 선수를 떠나보낸다는 것에 슬퍼하고 있을 것이다.

4년 전, 수원이 세 번째 별을 달던 날. 그때도 비슷했다. 마토가 오기 전 수원은 다른 외국인 선수가 그들의 가슴을 채워주고 있었다.



그 당시 수원의 수비의 핵심은 아르헨티나에서 온 수비수 하비에르 마틴 '무사'(29)였다.

당시 수원은 전반기 수비불안으로 인하여 많은 고민이 있던 상황이었다. 전기리그에 수원은 승점 18점으로 리그 4위를 차지했지만, 순위와는 다르게 16실점으로 13팀 중 2번째로 많은 실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비슷한 승점이던 2위 전북과 3위 울산이 각각 9, 8실점을 한 것에 비하면 두 배 가까이 되는 실점률이었다.

2004 K-리그는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를 거쳐서 플레이오프 팀을 가리는 제도였는데, 수원은 전기리그에서 겨우 4위를 하기는 했지만, 플레이오프 진출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에 있었다.

이에 수원의 차범근 감독은 후기리그를 대비하기 위해서 브라질 출신 수비수 크리스를 퇴출하고, 무사를 데려왔다. 무사는 아르헨티나의 라싱을 거쳐서, 포르투갈의 마리티모에서 뛰고 있던 그 당시 젊은 수비수였고, 차범근 감독은 터키 전지훈련에서부터 무사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했었다. 무사의 영입 후 인터뷰에서 차범근 감독은 무사의 1:1 수비상황에서의 적극성과 제공권을 높이 샀다고 밝혔었다. 수원은 기존 곽희주, 조성환, 박건하로 구성되던 쓰리백을 보완하기 위해 무사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적 초반, 무사의 수원 적응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후기리그 부천과의 경기에서 데뷔한 무사는 수비진에 녹아드는데 부족한 모습을 보였고, 190cm의 키에도 불구하고 헤딩경합에 실패하는 등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교체되었었다. 거기에 7월 29일 FC바르셀로나와 가진 친선경기에서 김대환과 충돌, 부상을 입고 전반 33분 만에 교체되는 등 이적 초반 무사는 순탄치만은 않은 적응기를 거쳐야 했다.

하지만, 무사가 적응하자 수원의 수비 문제는 해결되어갔다. 무사의 높이와 체구는 K-리그 공격수들이 감당하기 힘든 벽이었고, 중요한 경기마다 수원은 점수를 지켜내며 승리를 따내는 데 성공하였다. 부상중인 조병국에 대한 향수를 날려버릴 만큼 무사는 수원의 수비를 견고하게 만들어 주었었다.

전기리그 16실점의 수원은 후기리그 단 8골만을 허용하며 뒤에서 2위이던 전기리그와는 달리 두 번째로 실점이 적은 팀으로 변모한 것이었다. 수원은 후기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였고, 전후기 리그 통합 1위로 당당하게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리고 팬들의 무사에 대한 '환호'는 플레이오프에서 터져나왔다.

2004년 12월 5일 전남과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김진우의 프리킥을 머리로 받아 꽂아넣으며 수원을 챔피언결정전으로 이끈 것이었다. 반 시즌을 뛰었을 뿐인 장발의 외국인 수비수에 팬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무사는 챔피언결정전에서 포항의 우성용과 따바레즈를 완벽하게 묶는 활약을 선보이며 수원의 가슴에 세 번째 별을 안겼다.

무사는 당연하게도 2004 K-리그 베스트11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았고, 팬들은 언제까지나 무사가 수원의 벽이 되어주리라 믿었었다.

그러나 해가 지나고, 2005년 무사가 보여준 모습은 팬들의 기억과 많이 달랐다. 언어문제로 인한 수비라인의 문제가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고, 맨마킹이 장점이었던 무사가 점점 집중력 저하로 뚫리기 시작했다. 무사에 적응된 K-리그 다른 팀의 공격진들도 스피드를 이용해서 무사를 돌파하기 시작했고, 무사는 결국 새로 영입되었던 마토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2군으로 내려갈 수밖에는 없었다.

결국, 무사는 AFC챔피언스리그 명단에도 오르지 못한 채 챔피언결정전의 영광과는 다르게 쓸쓸히 울산으로 이적했다. 울산에서도 마땅히 자리를 잡지 못한 무사는 중국 C리그 베이징 궈안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더욱 쓸쓸했던 것은, 베이징 궈안에서도 무사가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었다는 것이다.

무사에게 화려했던 K-리그 경력은 어쩌면 수원에서의 2004년도 후기리그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후 2005년 수원과 울산에서 무사는 감독과 팬들이 기대하는 '그때만큼의' 활약을 해주지 못했고, 결국 기량저하의 명목하에 중국 리그로 이적하며 팬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 화려했던 순간 동안에 무사는 팬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하고 갔던 것이다.

수원이 네 번째 별을 달고 마토를 보내는 순간에 장발의 바티스투타를 닮은 한 아르헨티나 수비수. 무사를 추억해 본다.

[엑스포츠뉴스 편집부] 데스킹 과정을 통과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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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축구공화국(www.footballrepublic.co.kr)

2008 K-리그가 수원 삼성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지난 3일과 7일 두 차례 격돌한 수원 삼성과 FC 서울의 챔피언 결정전에서 두 경기 합계 1승 1무를 기록한 수원 삼성이, FC 서울을 제치고 26번째 K-리그 우승팀의 주인공이 됐다.

선수-코칭스태프-프런트-팬 모두가 하나로 똘똘 뭉쳐 이룬 이번 우승은, 수원 삼성의 앰블럼에 네 번째 별을 새길 수 있는 자부심을 심어줬다.

누구 하나 공이 적은 사람이 없지만, 이번 시즌 수원 삼성의 우승이 가능했던 것은 노장 선수들의 투혼과 눈부신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골키퍼 이운재(35)를 비롯해 김대의(34) 송종국(29) 등 우리 나이로 30대인 이들의 희생정신은 수원 삼성이 우승을 달성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명예 회복을 위해 눈물을 삼켰던 이운재

이운재에게 지난 2007년은 참 많이 아팠던 한 해였다. 아시안컵 기간 중 일어난 음주파문으로 국가대표팀 1년 출장정지 금지 처분을 받았고, 팬들의 야유와 조롱을 들으면서도 출전을 감수한 플레이오프에서는 포항 스틸러스에 패하면서 고배를 마셨다.

지금까지 축구를 해온 시간이 앞으로 할 수 있는 시간에 비해 훨씬 많은 이운재였기에, 그가 멋지게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운재는 지난 2007년의 아픔을 곱씹으며 2008년을 준비했다. 이운재는 수원 삼성에서 가장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팀의 정규리그 1위와 컵 대회 우승에 공헌했고 챔피언 결정전 승리에도 기여했다. 재기보다는 좌절이 더 쉬웠을 이운재였기에, 포기하지 않고 그가 지켜낸 수원의 골문은 더 튼튼했다.

십수 년 지켜온 포지션 변경에도 묵묵했던 김대의

전반기 연승 행진과 무패 가도를 달리던 수원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초여름이었다. 갑작스러운 선수들의 부상으로 팀은 휘청거렸고 연패를 하기 시작했다. 주전 선수의 절반 이상이 부상으로 신음하던 수원이었기에 무너지는 그들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노장 김대의는 무너지는 수원을 온몸으로 지탱하며 팀을 구해냈다. '폭주기관차'라는 그의 별명과 어울리지 않는 측면 수비수로 변신한 김대의는, 팀의 원하는 구석에서의 모진 역할을 묵묵하게 수행하며 팀을 위해 헌신했다. 이번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골을 넣는 임무보다는 이청용을 막는 다소 어색한 역할을 너무나 잘 수행하며 기어이 팀에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십수 년 동안 해왔던 자신의 포지션을 시즌 중 갑자기 버리면서까지 조용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 희생한 김대의. 그의 아름다운 희생은 수원이 끝내 무너지지 않고 리그 우승을 달성할 수 있었던 소중한 밑거름이었다.

주장으로서의 임무에 충실했던 송종국

"이번 시즌 모두가 고생했지만, 가장 힘들었고 많이 노력한 사람은 종국이 형입니다. 누가 물어봐도 이 대답은 변함없을 것입니다." 팀 동료 조원희의 말이다. 그는 주장으로서 팀을 위해 그야말로 살신성인(殺身成仁)한 송종국이 없었더라면 우승 트로피도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장 송종국은 이번 시즌 그라운드에서 보여지는 경기력 이외에도 너무 큰일을 잘 해냈다. 바로 감독과 선수들 사이의 훌륭하고 튼튼한 가교 역할이다.

이번 시즌 차범근 감독은 선수들의 의사를 반영하고 소통을 위해 노력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그런 차범근 감독의 변화가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감독의 그러한 의지를 지켜나가고 선수들의 인식 변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한 송종국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이번 시즌 수원은 스타들로 구성됐지만 그 어떤 팀보다 끈끈하고 똘똘 뭉쳐 더 강한 하나로 거듭날 수 있었다.

[축구공화국ㅣ손병하 기자] bluekorea@footballrepubl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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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엑스포츠뉴스(www.xportsnews.com)



[엑스포츠뉴스=안경남 기자] 차범근 감독이 이끄는 수원 삼성 블루윙스가 '라이벌' FC서울을 꺾고 정규리그에 이어 챔피언결정전까지 거머쥐는 데 성공했다.

7일 오후 2시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08 삼성 하우젠 K-리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수원은 에두의 맹활약에 힘입어 서울에 2-1 승리를 거뒀다. 지난 1차전에서 1-1무승부를 이뤘던 수원은 홈에서 서울에 승리를 거두며 진정한 K-리그 챔피언에 올랐다.

이로써 수원은 팀 통산 4번째 우승을 달성하게 됐다. 1998년과 1999년 김호 감독(現 대전) 체제 아래 K-리그 2연패를 이룬 바 있는 수원은 지난 2004년 우승에 이어 4년 만에 정상 등극에 성공하며 가슴에 4번째 별을 달게 됐다. 올 시즌 프로축구는 그야말로 수원 천하였다. 지난 10월 전남 드래곤즈를 제압하며 삼성하우젠컵 대회에서 첫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수원은 정규 리그 1위는 물론 이날 챔피언결정전까지 승리를 거두며 '퍼펙트 챔피언'으로 거듭났다.

수원은 스스로 힘으로 진정한 챔피언의 자리를 차지했다. 지난 시즌 정규 리그 1위에 오른 성남 일화가 플레이오프에서 신들린 경기력을 선보인 포항 스틸러스에 무너지며 K-리그 정상 자리를 내줬던 씁쓸한 기억을 재현하지 않았다. 더욱이 최종 우승 경쟁을 펼친 팀이 정규 리그에서 마지막까지 우승경쟁을 다퉜던 서울이었기에 이날 수원의 우승은 더욱 값져 보였다.

사실 기형적인 6강 플레이오프는 1년간 착실히 정규 리그를 치러온 팀들을 다소 힘 빠지게 하는 제도다. 일 년 내내 꾸준한 경기력을 통해 정규 리그 정상을 차지하더라도 최종 챔피언 결정전에서 패하면, 2인자로 기억된다. 이는 지난 시즌 여실히 증명됐다. 성남은 정규 리그에서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포항에 패하며 고개를 떨어내야 했다. 더욱이 성남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진출권도 획득하지 못했다.

지난 시즌 포항의 대역전극은 K-리그를 보는 재미를 더욱 배가 시켰다. 그러나 재미만 잡았을 뿐 사실상 플레이오프는 정규 리그 자체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엽기적인 제도다. 이는 단 한 번의 실수로 한 해 농사를 망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규 리그의 권위를 훼손시키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수원의 우승이 반가웠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비록 수원이 서울과 정규리그에서 박빙의 승부를 펼치며 골득실에 의해 1위를 차지했다 하더라도, 그 또한 수원이 한 시즌 동안 노력한 결과물이다.

프로연맹은 올 시즌을 앞두고 플레이오프에 대한 수정안을 내놓았다. 플레이오프가 치러지는 기간을 대폭 줄인 것. 이는 지난 시즌 포항이 적절한 휴식을 통해 별다른 체력 문제없이 우승을 차지했던 원인과 길었던 휴식 기간으로 경기감각을 잃었던 성남의 문제점을 보완한 것이다. 수정된 플레이오프 기간은 수원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지난 시즌 성남이 챔피언결정전 2경기 내내 경기감각을 찾는데 애를 먹었던데 반해 수원은 1차전 전반이 끝난 뒤 경기 감각을 찾았기 때문이다.

올 시즌 플레이오프를 예상하는 대부분의 주제는 체력과 경기 감각이었다. 단축된 플레이오프 기간은 하위 팀들에게 체력적인 부담을, 장기간 다음 상대를 기다려야 하는 상위팀들에겐 경기 감각이란 부담감을 안겨줬다. 이는 한 해 농사가 꾸준한 경기력과 감독들의 리그 운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단판승에 의해 결정나고 있다는 점을 방증해 준다.

제아무리 프로연맹이 수정된 안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불완전한 플레이오프 제도에 완벽함이란 있을 수 없다. 올 시즌 수원처럼 정규 리그 챔피언이 최종 우승을 차지하며 일 년간 흘린 땀의 대가를 받지 않는 이상 지난 시즌 성남과 같은 희생양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모든 경기의 가치는 동등해야 한다. 하루빨리 시즌 전체가 리그 우승을 다투는 결승전이 되길 기대해 본다.

[엑스포츠뉴스 편집부] 데스킹 과정을 통과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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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츠뉴스=이순명 기자] 길고 길었던 시즌도 끝나고, 마지막을 장식할 플레이오프도 이제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7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는 삼성 하우젠 K-리그 2008 챔피언결정전 2차전 수원삼성과 FC서울의 경기가 펼쳐졌습니다. 4년 만에 우승을 노리는 수원, 그리고 'FC서울'의 이름으로 5년간 기다려왔던 우승컵을 꼭 차지하고 싶었던 서울. 서로 '너에게만큼은 질 수 없다'는 각오를 단단히 보여줬고, 경기 시작 전부터 그들의 열정은 불타올랐습니다.





수원은 2층에는 체스판, 그리고 1층에는 체스판의 '왕'에 차범근 감독의 얼굴을 그려넣은 대형 통천을 선보였습니다.





원정석에 자리한 FC서울도 1층을 꽉 채우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열정적인 팬들은 원정이지만 밀릴 수 없다는 기세로 열심히 응원을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수원 구단에서는 그 밖에 일반석에 앉은 관중에게도 파란색 카드를 제공, 관중석을 온통 파란색으로 꾸며냈습니다. 4만여 관중이 파란색 물결을 보이는 장면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경기는 수원이 2-1로 리드한채로 종료시간이 다가왔고, 하늘에서는 승리를 축복하는 듯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수원은 우승했습니다.





수원의 차지가 된 K-리그 우승컵. 감독, 코칭스태프, 프론트, 선수단, 그리고 수원을 사랑하는 팬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우승컵이 수원의 앞에 놓였습니다.







우승 현수막을 들고, 팬들앞에서 기뻐하는 선수단이었습니다. 그리고, 수원팬들은 자리를 뜨지않고 환호로 답했습니다.







선수들도 다들 기뻐했고,



꽃가루와 함께 우승컵을 들었습니다.







우승 샴페인을 터트리며 기뻐한 선수들은,







팬들과 함께 기뻐했습니다.





팬들도, 누구보다 기뻐하며 끝까지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남의 우승이 아닌, 선수들만이 우승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승자가 되어 있는 자리였습니다.





팬들이 춤을 부탁하자, 아무런 망설임없이 김대의 선수는 성원에 보답하는 춤을 선보였습니다.



팬들의 열성은 장외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우승하면 아주대까지 맨몸으로 달려나가겠다던 팬은 정말 옷을 벗었고,





추운겨울날이었지만 물폭탄 세레모니를 하겠다는 팬도 과감히 기쁨을 자신의 몸으로 표현을 합니다.







수원은 우승을 했고, 수원 우승의 원동력은 여러 가지를 뽑아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큰 원동력은 아마 열성적인 팬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시즌 수원은 연승 행진을 달리던 기분 좋은 때도 있었고, 너무 좋았던 전반기였는지 수렁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던 어려운 시기도 있었습니다.

수원이 그런 시기를 이겨내고 네 번째 별을 가슴에 달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준 팬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고, 이날 수원의 팬들은 우승을 만끽하기에 충분한 한 해를 보냈습니다.

2008 K-리그, 수원의 네 번째 우승을 축하합니다.

[엑스포츠뉴스 편집부] 데스킹 과정을 통과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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