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이었다. 당시 '2008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을 치르던 한국 올림픽 축구대표팀에는 18살의 막내 기성용(FC 서울)이 있었다.
11월 21일 안산 와~스타디움에서 펼쳐진 바레인과의 최종전을 앞두고 막내는 고개를 푹 숙여야 했다. 바로 나흘 전 있었던 우즈베키스탄과의 최종예선 5차전에서 실망스러운 0-0 경기를 질타하는 팬들을 향해 '답답하면 너희가 직접 뛰던지'라는 메시지를 자신의 홈페이지에 남기면서 물의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바레인과의 그 마지막 경기에서 기성용은 고개를 들지 못했고, 죄송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뛰었지만 경기는 다시 0-0으로 끝났다. 정확히 1년 전 기성용의 모습이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기성용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지난 시절의 교훈으로 많이 성숙했고 성장했다. 축구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정말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였다.
가장 행복한 사실은 아직 그가 19살이라는 사실
지금까지 유수의 축구 강국을 보면서 느낀 많은 부러움 중 가장 컸던 것은 ‘신성’이란 단어를 사용하며 등장한 새내기들의 존재여부다. 그렇지 않아도 볼을 잘 차는 선수들이 즐비한 그들에게, 또 다른 어린 유망주의 발견은 언제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을 부러워 할 필요가 없어졌다. 우리에도 무서운 10대인 기성용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2008년 기성용은 정말 많이 성장했다. 지난 2007년 20세 이하 청소년 축구대표팀의 막내에서 올림픽 축구대표팀의 막내로 급성장한 그였지만, 1년 사이 A 대표팀의 막내로까지 성장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소속팀인 FC 서울에서야 그의 기량이 능히 통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A 대표팀에서도 주전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몇 년의 시간은 더 필요해 보였다. 사실 그래야 맞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성용은 나이에 비례하는 실력의 크기를 거부했다. 나이에 비해 조금 부족한 세밀함과 스피드를 제외하면, 기성용은 거의 모든 부분에서 완벽에 가까운 경기력을 선보였다. 득점력도 빛났고 패싱력과 중앙에서의 홀딩 능력도 19살 선수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었다.
그런 기성용의 재능은 지난 9월 5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던 요르단과의 친선 경기에서 A 매치 데뷔전를 시작으로 더 빛나기 시작했다. 기성용은 그 한 경기로 A 대표팀의 주전 미드필더로 자리를 잡으며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는 것에 성공했다.
불과 1년 전 20세 이하 청소년 축구대표팀에서도 막내였던 선수가 올림픽 축구대표팀을 거쳐 A 대표팀에까지, 그야말로 멈출 줄 모르는 기세로 성장한 것이다.
특히 지난 9월 15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렸던 북한과의 최종예선 첫 번째 경기에서는, 0-1로 패색이 짙던 경기를 극적인 무승부로 이끄는 동점골을 터트리는 등 자신에게 주어진 몫의 100% 이상을 해내기도 했었다.
뭐니뭐니해도 기성용을 바라볼 때 가장 흐뭇한 사실은 아직 그가 10대라는 점이다. 이제 12월이 지나가면 그도 약관(20세)의 나이에 접어들지만, 아직 미래가 창창한 어린 유망주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어린 ‘별’을 한국 축구가 보유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 기쁘다.
불과 1년 전과는 너무나 많이 다르게 성장한 기성용. 2008년 한국 축구 최대의 발견이라는 칭찬이 아깝지 않은 기성용이, 2009년 혹은 2010년 얼마나 더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축구공화국ㅣ손병하 기자] bluekorea@footballrepublic.co.kr
11월 21일 안산 와~스타디움에서 펼쳐진 바레인과의 최종전을 앞두고 막내는 고개를 푹 숙여야 했다. 바로 나흘 전 있었던 우즈베키스탄과의 최종예선 5차전에서 실망스러운 0-0 경기를 질타하는 팬들을 향해 '답답하면 너희가 직접 뛰던지'라는 메시지를 자신의 홈페이지에 남기면서 물의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바레인과의 그 마지막 경기에서 기성용은 고개를 들지 못했고, 죄송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뛰었지만 경기는 다시 0-0으로 끝났다. 정확히 1년 전 기성용의 모습이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기성용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지난 시절의 교훈으로 많이 성숙했고 성장했다. 축구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정말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였다.
가장 행복한 사실은 아직 그가 19살이라는 사실
지금까지 유수의 축구 강국을 보면서 느낀 많은 부러움 중 가장 컸던 것은 ‘신성’이란 단어를 사용하며 등장한 새내기들의 존재여부다. 그렇지 않아도 볼을 잘 차는 선수들이 즐비한 그들에게, 또 다른 어린 유망주의 발견은 언제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을 부러워 할 필요가 없어졌다. 우리에도 무서운 10대인 기성용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2008년 기성용은 정말 많이 성장했다. 지난 2007년 20세 이하 청소년 축구대표팀의 막내에서 올림픽 축구대표팀의 막내로 급성장한 그였지만, 1년 사이 A 대표팀의 막내로까지 성장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소속팀인 FC 서울에서야 그의 기량이 능히 통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A 대표팀에서도 주전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몇 년의 시간은 더 필요해 보였다. 사실 그래야 맞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성용은 나이에 비례하는 실력의 크기를 거부했다. 나이에 비해 조금 부족한 세밀함과 스피드를 제외하면, 기성용은 거의 모든 부분에서 완벽에 가까운 경기력을 선보였다. 득점력도 빛났고 패싱력과 중앙에서의 홀딩 능력도 19살 선수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었다.
그런 기성용의 재능은 지난 9월 5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던 요르단과의 친선 경기에서 A 매치 데뷔전를 시작으로 더 빛나기 시작했다. 기성용은 그 한 경기로 A 대표팀의 주전 미드필더로 자리를 잡으며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는 것에 성공했다.
불과 1년 전 20세 이하 청소년 축구대표팀에서도 막내였던 선수가 올림픽 축구대표팀을 거쳐 A 대표팀에까지, 그야말로 멈출 줄 모르는 기세로 성장한 것이다.
특히 지난 9월 15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렸던 북한과의 최종예선 첫 번째 경기에서는, 0-1로 패색이 짙던 경기를 극적인 무승부로 이끄는 동점골을 터트리는 등 자신에게 주어진 몫의 100% 이상을 해내기도 했었다.
뭐니뭐니해도 기성용을 바라볼 때 가장 흐뭇한 사실은 아직 그가 10대라는 점이다. 이제 12월이 지나가면 그도 약관(20세)의 나이에 접어들지만, 아직 미래가 창창한 어린 유망주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어린 ‘별’을 한국 축구가 보유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 기쁘다.
불과 1년 전과는 너무나 많이 다르게 성장한 기성용. 2008년 한국 축구 최대의 발견이라는 칭찬이 아깝지 않은 기성용이, 2009년 혹은 2010년 얼마나 더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축구공화국ㅣ손병하 기자] bluekorea@footballrepubli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