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의 이운재가 보여준 찰나의 판단력이 한국의 승리를 이끌었다.
20일 새벽(한국시각) 리야드의 킹 파드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3차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중요한 일전에서 한국이 2-0으로 승리했다. 이 날 경기에서 한국은 후반 31분 이근호의 선제골과 후반 45분 박주영의 쐐기골에 힘입어 사우디아라비아를 꺾고 최종예선 2연승을 챙겼다.
이 날 경기에서 한국이 승리할 수 있었던 승부처 중 하나는 바로 후반 12분 나이프 하자지의 시뮬레이션 액션에 의한 퇴장이었다. 상대에 완벽한 침투 패스를 허용해 맞이했던 실점 위기에서 노련하게 대처한 이운재의 침착함은 한국의 승리로 이어지는 밑거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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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어려운 경기였다. 6만 명의 관중이 들어찬 킹 파드 스타디움의 분위기, 홈 팀의 이점을 등에 업고 거세게 밀어붙이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맹공에 한국은 쉽지 않은 경기를 펼쳐야 했다. 전반 5분, 골문앞에서 이영표가 상대의 두 차례 슈팅을 몸으로 막아내는 등 한국은 수세에 몰렸다. 후반전에는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매서움을 과시하며 한국 수비진을 위협했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가장 빛났던 선수는 바로 수문장 이운재였다. 특히 후반 12분 나이프 하자지의 시뮬레이션 액션을 간파한 것은 왜 그가 K-리그 최고의 수문장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오범석의 패스 미스를 가로챈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도 우테프가 빈 공간으로 침투하는 하자지에게 정확한 패스를 시도했다. 순식간에 수비수간의 간격이 넓어지면서 하자지는 이운재와 맞서는 상황을 만들었다. 만약 하자지가 이 장면에서 골을 터뜨리거나 페널티킥을 유도했다면 후반전 초반 조금씩 분위기를 잡아가던 한국에 찬 물을 끼얹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운재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페널티킥을 유도하려는 하자지의 속 뜻을 간파한 것이다. 하자지는 시뮬레이션 액션으로 인해 경고누적 퇴장을 당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수적 열세에 몰렸고, 이후 한국은 2골을 터뜨리며 19년만에 사우디아라비아에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나세르 알 조하르 감독은 경기후 이 판정에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운재는 이 장면에 대해 기술적인 부분까지 언급하며 하자지가 시뮬레이션 액션을 고의적으로 했다고 주장했다.
이운재는 “페널티킥 상황을 주기 위해서는 해당 선수에게 반칙의 의도가 있었느냐의 여부가 중요하다.”라며 “시뮬레이션 액션은 반칙을 얻어내려고 고의적으로 한 행동이다. 당시 하자지가 볼을 옆으로 치는 것을 보고 ‘아 페널티킥을 얻어내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해 내밀던 발을 접었다.”라고 답했다. 또, “하자지가 볼을 옆으로 칠 때 페널티킥을 유도할 것이라는 것을 읽었다. 만약 그가 정말로 나를 제치려고 했다면 급속하게 스피드를 줄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즉, 자신의 경험으로 살펴볼 때 침착한 컨트롤없이 질풍같이 쇄도하던 하자지로서는 당시 페널티킥 유도 이외에는 답이 없었다는 것이다.
노련했던 이운재의 상황 대처에 허정무 감독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허정무 감독은 “정성룡, 김영광등 아직 경험이 모자란 골키퍼들이었다면 당시 상황에서 하자지를 덮쳤을 것”이라며 “역시 이운재는 노련하다. 상대의 움직임을 보고 태클하려다 발을 뺐다.”라고 이운재의 노련함에 감탄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운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관중이 쏘아대는 레이저와도 맞서는 등 무척 어려운 여건에서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이 모든 악조건을 이겨내고 팀을 수호했다. 대표팀 복귀시점에서 그의 복귀가 한국 대표팀 골키퍼진의 세대교체를 후퇴시킨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날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의 보여준 활약은 이운재가 여전히 국내 최고의 실력자라는 것을 증명했다. 돌아온 수호신의 활약에 한국의 골문은 더욱 튼튼해진 모습이다.
[축구공화국ㅣ김태석 기자] ktsek77@footballrepubli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