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가쁘게 달려왔던 2008년 K-리그가 끝났다. 25돌을 맞아 치러진 올 K-리그에서는 대전 시티즌의 김호 감독이 개인 통산 200승을 돌파했고, K-리그 출범 후 1만 호 골이 터지는 등 많은 기록으로 풍성했다. 그 가운데 지난 9일 열렸던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는 수원 삼성을 우승으로 이끈 차범근 감독을 비롯해, 각 포지션별 최고의 선수 11명이 2008년 K-리그의 가장 빛난 별로 선정됐다.
이에 <축구공화국>에서는 2008년을 환하게 비춰준 그 12명의 이번 시즌을 정리하고 다음 시즌을 전망하는 ‘2008 K-리그, 가장 빛난 열두 별’을 <연말/특집 시리즈 1탄>으로 준비했다./편집자 주
◆축구공화국 <연말/특집 시리즈> 제1탄
▲2008 K-리그, 가장 빛난 열두 별-1편:이근호(23, 대구 FC)
골 넣는 유전자가 부족하다는 얘기를 들었던 한국 축구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었다. 많은 공격수가 그 부족한 골 유전자는 더 이상 한국 축구에 대물림되는 병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아직 그 문제를 확실하게 풀어낸 공격수는 없었다.
그러나 2008년, 가장 가능성 큰 후보를 찾아내는 것에는 성공했다. 대구 FC의 공격수이자 한국 축구대표팀의 스트라이커 이근호다. 이근호를 한국 축구의 부족한 골 유전자를 바꿀 수 있는 후보로 지목한 이유는, 상대 골 마우스 앞에서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다. 최근 수년 동안 한국 축구에서 볼 수 없었던 유형의 스트라이커다.
신데렐라가 되기 위한 준비
지난 2007년은 이근호에게 신데렐라의 탄생을 준비하는 한 해였다. 지난 2006년까지 그의 이름을 대신할 수 있는 수식어는, 청소년 축구대표팀 출신 정도와 2006년 수상한 2군 리그 MVP 수상뿐이었다. 깊은 관심으로 K-리그를 바라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이름조차 생소할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005년 네덜란드 엠멘에서 펼쳐졌던 세계 청소년(U-20) 월드컵에서는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벤치 멤버로 한 차례의 본선 경기에도 나서지 못했고, 인천 유나이티드에서는 2년 동안 여덟 차례의 1군 기록만 있을 뿐 2군 생활을 전전하던 그였다. 그나마 그 여덟 차례 중에서도 교체가 다섯 번이었다.
그랬던 그가 공격 축구를 천명한 변병주 감독을 만나면서 신데렐라가 될 수 있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당시 올림픽 대표팀과 A 대표팀을 지휘하던 핌 베어벡 감독 아래 공격적 재능을 보여준 이근호는, 그해 올림픽 본선에 진출하기 위한 올림픽 축구대표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급부상했다. 불과 2년 전 열렸던 청소년 월드컵 멤버가 고스란히 올라온 올림픽 축구대표팀에서 그의 위상은 달라졌다.
K-리그에서의 활약도 눈부셨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K-리그에서 단 한 개의 골도 기록하지 못했던 그가, 10골을 넣고 세 개의 도움을 기록한 부분은 신데렐라의 탄생을 알리는 전주와 같았다. 대구 FC하면 공격 축구가, 그 공격 축구의 선봉장으로는 이근호가 떠올랐다.
그리고 2008년, 신데렐라의 탄생을 알리기 위한 희망찬 시작을 알렸다. 대구 FC에서는 외국인 선수 에닝요와 공격 파트너 장남석과 힘을 합쳐 K-리그에서 가장 도전적인 팀으로 거듭났고, 올림픽 대표팀과 국가대표팀을 넘나들며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올림픽에서의 실패, 그리고 남아 있는 체력 문제
하지만, 신데렐라의 탄생을 알리기 위해서는 이근호가 넘어야 할 벽이 너무 많았다. 약팀의 한계에 힘들어하던 대구 FC를 혼자 이끌기엔 무리가 있었고, 각급 대표팀에서도 포지션 경쟁을 통해 진정한 주전으로 다시 태어나야 했다.
공격 축구를 지향하는 대구 FC에서 이근호가 넣었던 만은 골은, 어쩜 누구라도 가능했을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무수한 공격 기회에서 그 정도의 골을 넣는 것은 당연하다는 혹자의 평가도 일면 타당하다. 따라서 이근호가 넘어야 할 벽은 K-리그에서의 활약이 아니라 대표팀에서였다.
2008년 올림픽 축구대표팀이 치렀던 경기들 중에서 이근호는 박주영과 함께 두 골을 넣으며 팀 내에서 가장 많은 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정작 올림픽 본선 무대에서 그의 득점은 침묵했다. 세계무대에서의 한계를 절감한 순간이다.
올림픽 대표팀에서의 실패와 더불어 이근호를 압박하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시즌 체력이다. 1년을 기복 없이 소화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요인 중 하나인 시즌 체력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은, 지난 2007년 가능성만 보여주는 것에 그쳤던 이근호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였다. 지난 2007년 이근호가 신데렐라로 완벽한 탄생할 수 없었던 원인도, 바로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급격하게 떨어진 체력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근호는 올림픽에 다녀온 후 K-리그에서 슬럼프에 빠지며 이대로 주저앉고 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사게 했다. 올림픽이란 실패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떨어진 체력으로 그라운드에서 통통 튀지 못하는 이근호는 급격하게 평범한 선수로 전락했다. 거기서 멈추면, 그 역시 다른 공격수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선수로 남을 수도 있었다.
우연한 기회, 스트라이커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하다
그런 이근호에게 기회는 우연하게 찾아왔다. 그것도 한국 축구의 최고봉인 A 대표팀에서다. 북한과의 최종예선 첫 경기를 무승부로 마친 허정무 감독은 10월 15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UAE를 상대로 반드시 이겨야 할 2차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경기에 앞서 준비한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서, 허정무 감독은 정성훈과 신영록을 투톱으로 선발 출전시키며 포메이션의 변화를 불러왔다.
전반 3분 터진 기성용의 선제골로 1-0으로 앞서던 한국은, 이후 이렇다 할 공격 해법을 찾아내지 못한 채 과거의 경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맞이한 후반, 신영록 대신 이근호가 들어가면서 경기는 급속도로 바뀌었다. 대표팀에서 사실상 첫 투톱 역할을 해본 이근호는, 아주 익숙한 자리인 듯한 편안한 움직임을 선보이며 두 골이나 뽑아냈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나흘 뒤 열린 UAE와의 최종예선 2차전에서도 두 골을 뽑아낸 이근호는, 19년 만의 승리라는 중요한 도전을 수행했던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최종예선 3차전에서도 선제 결승골을 터트리며 19년 동안 이어지던 질긴 악연의 고리를 끊었다. 신데렐라의 화려한 탄생을 알린 순간이다.
2008년 K-리그에서도 이근호의 기록은 빛났다. 외국인 선수 일색인 공격 부분에서 리그와 컵 대회를 합쳐 13골 6도움을 기록하며 국내 공격수의 자존심을 살렸다. 공격수로서 가장 좋다는 2:1에 가까운 득점과 도움 비율도 이상적이다. 이 기록은 올림픽 대표팀과 A 대표팀의 일원으로 쉼 없는 일정을 소화하며 이뤄낸 기록이라 더욱 값지다. 데얀이나 두두에 비해 부족했던 개인 기록에도 불구하고 그가 시즌 베스트 11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2008년 이근호는 골 넣는 유전자가 부족하다는 한국 축구의 고질병을 치료해 줄 희망으로 떠올랐다. 물론 그 희망이 실제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2009년에도 변함없는 활약이 필요하다. 그러나 상대 문전 앞에서 그가 보여준 득점 본능과 투쟁심은, 지금보다는 좀 더 성장할 내일을 기대케 하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신데렐라의 탄생을 알린 이근호, 이근호가 앞으로 신데렐라로서의 행복한 삶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축구공화국ㅣ손병하 기자] bluekorea@footballrepubli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