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 결코 적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배움에는 국경도 없고 나이도 없다. 처음 셀틱에서 쏟아진 낯선 동양인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들을 이겨내야 했고, 46년을 살아온 한국과는 모든 것이 다른 스코틀랜드의 문화와 환경에 적응을 해야 했다.
여러가지 어려운 사정에 타지의 생활의 외로움과 고독함이 밀려 올 때면 '내가 왜 이 고생을 할까'라는 생각이 잠시 하기도 했다. 인터넷을 통해 들려오는 한국 축구 소식, 특히 자신을 먼 곳으로 보낸 인천의 소식을 듣고 외로움을 달랬고, 셀틱파크(셀틱의 홈 구장)에서 축구를 보고, 명장 스트라칸 감독의 조언을 벗삼아 매 순간 열정을 쏟아 셀틱의 마음을 녹였다.
①편에 이어...
-영국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잘 열지 않는 편이다. 친해지고 나면 아주 활짝 여는 편이라고 한다.
그렇다. 조금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다. 뭐라고 해야 할까… 탐색을 한다고 할까? "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 하고 나를 보던 눈들이 느껴졌다. 무식해서 용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웃음) 무식하다고 해서 예를 갖추지 않고 정말 무식하게 다가선 것은 아니고, 기본적인 예의를 지킬 것은 지키고 다가섰다. 결국 사람이 사는 모습은 다 같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상대방의 시선이나 인식이 처음부터 곱게 다가올 수는 없다.
처음에는 그게 두렵고, 또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움추려들 수ㄴ,ㄴ 없었다. 나도 나이가 적은 사람이 아니라 한국의 보편적인 인식이나 사고방식에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모든 것을 뛰어넘어야 했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들이댄다고 하나?(웃음) 아마 내가 무게나 잡고 있었다면 아직까지 서먹서먹했을 것 같다.
-인천과 셀틱을 비교하자면 많은 점에서 차이가 있을 것 같다. 느낀 점은?
환경, 시설면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쉽게 구단 직원 수를 예를 들자면 이곳은 200명이 넘는다. 인천을 비롯한 대부분의 K-리그 팀들은 2~30명 수준이다. 많은 부분에서 셀틱이 우수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팀과 팀의 비교를 넘어 축구 문화가 가지고 있는 차이가 크다.
물론 인천이 좋은 점도 있다. 인천은 시민구단이다. 다른 구단에 비해 앞서갈 수 있는 마케팅 능력, 그리고 경영진의 마인드가 갖추어져 있다. (지금은 사임을 했지만) 작년 장외룡 감독을 1년간 유학을 보냈다가 다시 감독으로 복귀할 수 있게 했다. 당장의 성적에 급급할 수 밖에 없는 프로팀이 현직 감독을 1년 동안 공부를 하라고 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먼 미래를 보고 더 좋은 감독이 되어 인천에 또는 한국 축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고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것들은 축구인 출신의 경영자(안종복 사장)가 아니면 쉽게 결정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도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고마울 수 밖에 없는 일이고, 이런 폭 넓은 생각들, 사고방식이 인천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셀틱의 명장, 스트라칸 감독을 1년간 옆에서 지켜봤다. 어떤 모습이었나?
스트라칸 감독에게는 정말 배운 점이 많기 때문에 할 말이 많다.(웃음) 지도자의 눈으로 볼 때, 온화하고 자상하다. 하지만 보이지 않은 카리스마로 팀을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의견을 교환했다. 스트라칸 감독이 얼마전 나에게 " 킴~킴~ " 하고 부르더니 이런 말을 하더라. " 나는 선수들을 가족들로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진짜 가족들은 나를 최악의 아버지, 최악의 배우자로 생각한다 " 고 하며 " 당신도 그런 운명인 것 같다. 돌아가면 선수들을 최고의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잘 하길 바란다 " 라고 한 적이 있다.
또 자기가 맨유의 퍼거슨을 벤치마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엄청난 실패를 하면서 배웠는데, 나한테는 " 누군가를 따라하지 말고 내 고유의 것을 가지고 자신감을 갖고 하라 " 고 했다. 모든게 도전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중심을 가지고, 주위의 조언을 귀담아 듣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것을 잘 해야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해줬다.
스트라칸 감독은 선수들과 다정다감하게 대화를 한다. 선수가 잘못하는 것이 있으면 바로 수정을 해 주고, 또 후에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문제점을 지적해주고 고칠 수 있도록 동기를 유발해준다. 경기의 승패와 관계 없이 팀 분위기를 좋게 이어나갈 수 있도록 상당히 많은 노력을 하는 것이 보인다. 팀 대패를 한 다음날 훈련에는 오히려 자신이 살짝 과하게 느껴질 정도로 팔짝팔짝 뛰고, 크게 웃으면서 액션을 크게 한다. 오히려 압박감을 느낄 선수들을 편하게 해주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물론 훈련은 심각하게 한다.
가끔 말썽을 부리거나 경기장에서 경솔한 행동을 하는 선수들에 대해서도 현장에서는 그냥 모른 척 한다. 나중에 선수의 심리적 상태가 안정되었다고 판단을 했을 때, 다시 조용히 불러서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한다. 선수들의 감정을 컨트롤하면서 최상의 상태로 끌어올린다. 자연스럽게, 동반자이자 후원자의 모습으로 선수들 곁에 있다.
한국의 문화가 아닌 유럽의 문화이기에 가능한 상하관계가 아닌 수평관계라고 볼 수 있는데, 다소 우리의 현실에는 맞지 않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요점은 감독이 먼저 선수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한 노력을 통해 선수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는다는 것이다. 감독은 선수들의 든든한 후원자고 동반자이고 결국에는 팀이라는 이름의 한 배를 탄 믿음직한 선장으로 선수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훈련에 앞서 감독이 미리 나와서 콘을 들고 배치를 하고, 공을 정리하고, 조끼를 들고 그날 할 훈련에 대한 준비를 먼저 하는데, 선수들은 그냥 시간에 맞춰 나와서 준비된 훈련을 하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선수들이 훈련에 열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저것이 프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저렇게 코칭스태프가 보조를 하고 희생을 할 때 선수들이 그 만큼 따라와 주고 또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 것이 프로의 시스템이라는 것을 그에게 배웠다.
- 셀틱의 시즌 팀 빌딩 과정을 지켜보며 느낀 점은?
우리는 동계훈련을 많이 한다. 특히 휴식기 동안 떨어진 체력을 끌어올리고 시작한다. 이곳은 선수들이 휴식기 동안 떨어진 체력을 다 알아서 올리고 온다. 선수들이 자신이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프로들이다. 물론 시즌 중간만큼 체력이 완벽하지는 않다. 시즌 전에는 연습게임을 통해서 감각을 유지하고 새로운 팀 멤버와의 호흡을 맞추는데 중점을 둔다.
훈련 과정을 보면 근력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스텝, 점프, 파워 이런 것들을 우리나라에서는 동계훈련에 중점적으로 하고, 시즌 중에는 잘 하지 않는다. 이곳은 지속적으로 조금씩 한다. 우리의 경우 경기 70분이 지나면 동계훈련을 통해 키운 체력들이 소모가 되는데 이곳은 근력을 지속적으로 누적하게 한다. 한 번 훈련을 할 때는 큰 것이 아닌데, 매일 조금씩 근력 운동을 하면서 한 시즌을 거뜬하게 보낼 수 있는 체력을 만들어준다.
선수들 개인별로 체력, 근력, 지구력에 대한 데이터를 다 체크해서 매주 개인과 감독에게 통보하면, 선수들은 그것을 보고 자신이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훈련 후 개인 훈련을 알아서 잘 한다. 각 분야 담당자들이 각종 개인과 팀에 대한 데이터를 시즌 내내 감독에게 보고하고, 감독은 그것을 바탕으로 한 시즌 동안 자신의 전략을 입혀 나간다.
-셀틱에서 17세팀을 잠시 지도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다고 들었다. 그 만큼 많은 훈련과 경기를 본 열정에 이곳 사람들의 믿음을 샀다고 볼 수 있는데, 이곳의 유소년 훈련은 어디에 중점을 많이 두는가?
매 순간 상황에 맞게 대응하는 능력을 많이 키워준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한다. 부분전술, 개인전술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장차 창의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솔직히 우리나라는 당장의 성적에 급급하기 때문에 불가능하지 않은가?) 우리나라는 당장 내일 이겨야 하기 때문에 유소년들에게 기본을 교육할 여유가 없다. 이곳의 유소년들에게 승패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정확하게 교육해서 다음 단계의 팀에서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길러내는 것이 이곳 유소년 팀들의 인식이다. 한 시즌당 8명 정도가 유소년팀에서 성인팀으로 합류한다. 우리나라의 현실적인 사정 때문에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많은 분들이 노력하고 있고, 나도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이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간다. 가장 값진 가르침은?
스트라칸 감독에게 많은 것들을 배웠다. 선수들에 대한 마음. 훈련장에서의 지도방식, 경기의 흐름을 이어나가는 방법을 정말 감명 깊게 배웠다. 앞서 언급했지만, 가장 감명깊은 그의 모습은 경기에 앞서 선수단에게 전달할 내용들을 결코 한꺼번에 미팅을 통해 전달하지 않는다. 일일이 개인 면담을 통해 전달한다. 어떻게 보면 코칭스태프 입장에서는 2~3배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가 훈련이 끝나기가 무섭게 책상 앞에 않아서 고민에 빠지는 것 같다. 선수들 심리를 잘 읽어서 최고의 활약을 이끌어낸다. 정말 지도자의 역량이 크다고 본다.
경기 외의 것들도 배울 점이 많았다. 6만여 명이 입장할 수 있는 셀틱 파크에 매번 5만 명 이상이 들어온다. 1인당 20파운드씩 내고 들어온다고 치면 매 경기당 20~30억씩은 입장수익으로 버는 것이다. 경기장 안팎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많은 노력을 하고 그 노력이 일관적으로 이어지면서 가능할 수 있었던 일이다. 축구장 밖에 나와도 다른 상품들을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면서 팬들이 팀을, 축구를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서 1년간 배운 것들을 돌아가서 한국 축구에 접목을 시켜야 하는 입장이다. 이것에 또 큰 고민일 것 같다. 신체조건, 시설 등이 모두 다르다.
현실적으로 많이 다르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이곳의 시스템들을 잘 정리해서 접목을 하는 것이 인천의 발전에, 한국 축구의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도 옛날 같지 않아서 지도자들이 공부를 많이 한다. 나 역시 1년 동안 셀틱이라는 구단 내에 들어와서 경기장 안팎에서 배운 것들은 뭐라고 표현을 할 수 없다. 장차 나만의 노하우가 될 것 같고, 그랬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국 지도자들 중에는 드물게 한 팀에서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앞으로 후배 지도자들이 이런 시도를 많이 할 것이다. 그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정말 소중한 기회였고, 흔치 않은 기회였다. 조언에 앞서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유럽과 남미의 선진 구단들에 스폰서를 많이 한다. 우리가 프랑스 테제베를 도입할 때나, 미국에서 전투기를 구입할 때 기술이전을 조건으로 내걸고 하나라도 더 얻어서 도움이 되도록 한다. 스폰서를 하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홍보효과가 최우선이겠지만, 조금 더 생각을 해 줘서 계약 내용에 우리 지도자들이나 구단 관계자들이 상대 구단 내부에 들어와서 선진 시스템을 배울 수 있는 내용을 넣어서 좋은 기회를 많이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지도자 연수를 꿈꾸는 당사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언어다. 내가 영어를 조금 더 잘했다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있다. 해외 진출을 꿈꾸는 선수들 뿐만 아니라 짧고 길게 그리고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버리고 이곳의 문화나 사고방식을 받아들이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싶다.
모든 지도자의 궁극적 목표는 감독이 되어 좋은 팀으로 보답하는 것이다. 인천에 돌아가면, 물론 성적이 우선이겠지만 인성에 중점을 두고 대화를 통해 선수들에게 다가서는 것 부터 시작하겠다. 그리고 팬에게 받은 사랑을 열정으로 돌려주는 셀틱의 모습, 한국에 심어야 한다. 한국에 돌아가서 이것부터 선수들에게 가르쳐주고 싶다.
-긴 인터뷰 감사드린다. 건승을 기원한다.
김시석 코치는 지난 2월, 인천을 떠나기 전 인터넷을 통해 팬들에게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겼다.
정들었던 인천을 잠시 떠난다는 사실에 가슴 한 쪽에 구석에 구멍이 생긴 것 같습니다. 전 축구 외에는 다른 것은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제가 가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모두 배워서 인천 축구, 나아가 우리나라 축구 발전에 보탬이 되겠습니다. 팬 여러분, 정말 1년 동안 죽을 힘으로 배워오겠습니다. 먼 이국땅 유럽에서 초심으로 돌아가 게으름 피우지 않고 스스로 노력하는 지도자가 되어 돌아오겠습니다.
한 해 동안 '죽을 힘으로' 치열하게 자신과의 싸움을 펼친 김시석 코치는 오는 24일 정든 가족과 팬들의 곁으로 돌아간다. 정들었던 인천을 떠나며 그의 가슴 한 켠에 생긴 작은 구멍을 채울 날이 다가온 것이다.
결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셀틱에서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인천을 바라보는 팬들의 가슴, 그리고 한국 축구의 발전을 기원하는 팬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채워 주길 기대해본다.
< 끝 >
인터뷰, 글 < 글래스고(스코틀랜드) > =김동환
깊이가 다른 축구전문 뉴스 스포탈 코리아(Copyright ⓒ 스포탈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